수첩 시론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김경주

최다원 2019. 4. 2. 20:09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김경주

 

시에 대해 말한다는 것

 

저는 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을 살다가 등단하게 되었고 이렇게 지금 시를 쓰고 있습니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 시를 이야기한다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시는 혼자 하는 가슴앓이 같아요. 그 자리에 서면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돌아서고 나면 쓸쓸한 마음이 드는 자리가 바로 시이죠. 시는 정답이 있다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전 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 잠시 있었지만 그때도 시를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저 역시 학생들에게 시를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제가 시를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를 남에게 가르칠 때도 조심스럽고 많이 헤맸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보다 조금 더 많이 헤매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것이 시적인 질감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시적인 용기, 시가 가질 수 있는 용기

 

저는 대한민국에서 특강을 많이 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특강의 90% 이상이 문예특강이 아니라 취업특강이었습니다. 영화학과, 연극학과, 인류학과, 경영학과 등에서 취업특강을 많이 했습니다. 저를 취업특강에 많이 불렀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떻게 여러 개의 작업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지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자칭 문화를 다룬다는 친구들이 저를 궁금해하고 만나고 싶어 개인적으로 찾아오곤 하는데, 그 친구들에게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무게를 잃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저는 안상수 디자이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상수 선생님은 한글이란 문자 체계로 디자인 작업을 하시는 아주 유명한 분인데, 어느 날 전화를 주셔서 이상을 상대로 굿을 벌이는데 시인의 자격으로 참석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본인이 디자인적으로 고민하고 있었을 때 이상의 시집을 읽으면서 언어적 의미보다는 도형적인 측면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선생님은 이상이 금홍이와 처음 차린 ‘69다방’이란 상호를 따와서 자신의 ‘69다방’을 지어놓고, 일 년에 두 번씩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이상의 진혼제를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혼제 때 유명한 한 박수무당이 나와 이 진혼제는 이상을 불러내는 것인데, 그는 당대 대단히 잘 놀던 시인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잘 놀지 않으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상을 불러내 잘 데리고 놀다가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백 년 전의 이상 시를 지금도 독특하게 인정하고 재고해보는 이유는 제 생각에는, 그 당대에 그런 시를 쓸 수 있는 ‘시적인 용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적인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시를 쓴다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런 시적인 느낌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인도 군인시절의 네 권의 시집

 

저는 군대를 굉장히 늦은 나이인 스물넷에 갔습니다. 그 당시 제 학점은 선동률 방어율과 비슷했죠. 저는 무인도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일 년 만에야 휴가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군대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저는 주변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군생활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때 주위 분들로부터 시집을 가져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아주 재밌는 책을 추천하면 고참에게 뺏길 것이 분명하지만 시집은 아무도 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은 온전히 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생전 처음 주위 사람들이 추천한 시집 네 권을 들고 군생활을 하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제대할 때까지 그 시들을 제 식대로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당시 짝사랑하던 친구가 있어서 그 시집들은 연애의 감정을 위한 용도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뭔가 연애편지는 알 것 모를 것 같은 감정으로 사람을 울렁거리게 하잖아요? 그런 감정을 느끼며 저는 시적인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매직 아이(Magic eye)’처럼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면 보일 듯 말 듯한 것이 나오는 느낌, 저는 시를 처음 대할 때의 느낌도 이런 것 같아요. 선명함 속에 감춰진 희미함, 그런 느낌들이 제게 시적인 느낌과 시적인 질감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대를 하고 나서 저는 남보다 시를 늦게 시작했고 늦게 알게 되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어떤 자신감은 충만했습니다. 그것은 시적인 느낌에 대해서는 저는 어느 누구보다도 아주 절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군대 생활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네 권의 시집이 무모하게 자신감을 가지게 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아마도 전공자로서 시를 대했다면 그렇게 시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시라는 게 어떤 형식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시적인 것에 대한 집착과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고 있는 상태만이 시인이다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고 합니다. 시를 쓰고 있는 상태만이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59년 왕십리〉를 부른 모 가수가 가수일 때는 바로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듯이, 저는 시를 쓰는 순간만이 〈시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적인 것을 찾아가는 느낌들, 저는 시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제가 시를 시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무엇보다도 제 몸이 가진 욕구와 제 몸이 가진 본능과 제 몸이 가진 결핍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저는 제 몸이 가진 에너지에 충실하고자 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한 우물을 파지 않는 사람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시인 외에도 저는 연극 작업이나 다양한 여러 작업들을 하고 있고,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해 왔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시를 지키고 쓰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저는 시라는 것은 경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의식화되려는 것들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새로운 시인을 탄생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긴장이 없는 시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시에서 이런 긴장의 지점이 이 시의 화자가 어느 지점에 낙차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아직도 저는 좋은 시와 나쁜 시에 대한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좋고 나쁨의 가치는 도덕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제겐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고자 할 때는 좋은 시를 쓰려고 하는 느낌보다는 잘 쓰려는 느낌이 더 현명하다고 봅니다.

작가의 고유성과 소통의 의지

 

제가 좋아하는 파스칼 키냐르라는 작가는 시에 대한 의미 있는 정의를 내린 바 있습니다. 저는 그 정의가 굉장히 중요한 시적인 지점을 지적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시라는 것은 단어 하나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 때문에 평생을 말을 더듬으며 살아야 하는 자들이 가진 수증기일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수증기적인 상태에서 언어가 시의 형태로 전환된다는 느낌이 좋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시가 탄생했던 그 지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것은 합리적이기보다는 이미지적인 논리에 가깝습니다. 이 이미지적인 논리를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요, 저는 너무나도 소통이 중요하지만 작가란 자신의 고유성을 자신의 언어로서 보여 주는 용기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소통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시인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통, 공감은 굉장히 멀리 있고 우리는 이것을 끊임없이 쫓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울릴 수 있으며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의지 자체가 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폐적인 언어나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실험성을 트렌드로 내세우는 젊은 시인들의 과장된 포즈도 저한테는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 젊은 시인들은 여러분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작가란 인간을 고려하는 자라고 봅니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언어와 호흡이 언젠가는 읽힐 수 있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잠재적인 독자가 내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을 기획하고 그 독자를 고려하는 것이 작가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여진(餘震)의 감정에 대한 기억의 주술

 

저는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아마 젊은 문인 중에서 저처럼 많이 여행한 친구도 없을 겁니다. 15년 동안 저는 450여 곳을 돌았고 일 년 중 3~4개월은 여행 중에 있었던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여행을 다녔던 이유는 여행의 어떤 흐름, 자유로움 때문입니다. 저는 ‘여행’이라는 말보다는 ‘여정’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데 ‘여정’은 시 쓰기와 굉장히 많이 닮아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임, 낯선 곳에 대해 느끼는 강렬함,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어리둥절함, 낯선 곳에서 헤매임 등은 시를 찾아가는 느낌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은 자신의 일상의 속도를 버리지 않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시 쓰기에서 여행과 가장 많은 지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여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진은 일종의 여독과 같습니다. 지진이 일어날 때는 그 공포와 충격 때문에 모든 사람의 얼굴의 반응이 똑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난 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받았던 참혹한 심정과 슬픔은 각자의 표정으로 드러납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여진이 온다고 합니다. 여행이라는 것도 ‘내가 분명히 거기 낯선 곳에 있었지’라는 내 기억만이 온전히 주술을 걸어 확인받을 수 있는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을 언어로 복원하려는 의지들이 모여 시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행의 대상지와 머물었던 장소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가 더 중요하죠.

 

Travel 혹은 시적인 멀미

 

저는 두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야 제 고향과 감성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시인에게 있어 고향은 자신의 감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인은 감정으로부터 태어납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제가 느꼈던 감정이 중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가꾸는지가 중요한 시적인 작업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여행을 통한 여진이라든지, 멀미가 주는 느낌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멀미라는 단어가 영어로 뭔지 아십니까? 멀미의 구어체적 표현은 ‘travel wave’입니다.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멀미라는 말을 할 때 “I have travel wave.”라고 합니다. 나는 지금 여행 파도를 겪고 있다는 이 표현은 구어체에 가깝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굉장히 시적이고 문어체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의 모국어가 전 세계의 어느 언어보다 가장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모국어가 가장 독창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영어라는 것은 그 어떤 나라보다 독창적이지는 않겠지만 굉장히 보편적일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travel wave’란 단어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은 남들과는 다른 모국어의 질감을 가지고 살겠다는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시인은 스스로 고유한 언어를 채집하고 발견해야 합니다.

 

또한 시인들은 새로운 문법과 새로운 의태어, 의성어를 더욱 많이 발견하고 쓸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시를 쓰는 데 있어 저에게 중요한 하나는 시를 쓴다는 것을 잊고 ‘시적인 것’을 찾는 행위이고, 다른 한 가지는 여행을 통해 느껴지는 ‘시적인 질감’ ‘멀미’ ‘시차’ 같은 감정들입니다. 제겐 이런 질감들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들이 제가 평상시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시를 쓰기 위한 예열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사기의 전원을 켜고 바로 복사를 할 수 없듯이 시인도 어느 정도 달궈질 수 있을 때까지 예열의 작업이 요구됩니다. 특히 시는 예열의 과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디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시를 준비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적인 느낌을 느껴야 합니다. 유럽의 많은 시인들이 극작가로 사는 이유는 그들이 시인으로 멸종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연극을 통해서 시적인 질감을 풀고 그 안에 텍스트를 집어넣습니다. 역류하는 방식으로 시를 표현하는 것이죠. 대한민국만큼 시인이 많고 대한민국만큼 시집이 많이 나오는 나라도 없는데, 대한민국만큼 시집을 읽지 않고 대한민국만큼 똑같은 시를 쓰는 작가도 없습니다.

저는 우리 시단이 좀 더 다양해져 이런 기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젊기 때문에 젊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 가장 충실하려 합니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도 어른들의 말도 있지만 저는 당분간은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여러 개의 우물을 파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의 우물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시적인 상태에 충만하기 바라면서 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산경 - 도종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것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다리를 떠는 남자 - 김기택

컴퓨터 자판을 두리리면서

그는 명렬하게 다리를 떨고 있다

자기 꼬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가 일에 흠뻑 취한 사이

마음은 저 혼자 몰래 춤을 춘다

그와는 무관한 또 다른 그가

엉덩이 밑에서 열심히 놀고 있다

 

 

유리창 - 장인수

 

학교는 유리창이 참 많은 건물

종종 뒷산의 산새들이

학교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다

유리창에 숨어사는 뒷산 때문이라고도 하고

발효한 산열매를 쪼아먹고 음주비행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새가 되고 싶은 유리창의 음모라는 풍문이 설득력이 있다

유리창에는 새의 충격이 스며 있다

유리창은 종종 깊은 울음을 운다

비가 올 때는 열 길 스무 길 눈물의 계곡이 생긴다

유리창에 부딪쳐 죽은 새는 다시 살아나

유리창을 마음대로 통과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산맥과 달님도 마음대로 뚫으며 날아다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