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유월의 살구나무//김현식

최다원 2022. 1. 14. 19:04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 기억나는 일이 뭐,

아무것도 없는가? 유월의 살구나무 아래에서

단발머리의 애인을 기다리며 상상해 보던

피아노 소리 가늘고도 긴 현의 울림이

바람을 찌르는 햇살 같았지 건반처럼 가지런히

파르르 떨던 이파리 뭐 기억나는 일이 없는가?

양산을 꺼꾸로 걸어놓고 나무를 흔들면

웃음처럼 토드득 살구가 쏟아져 내렸지

아!살구처럼 익어가던 날들이었다 생각하면

그리움이 가득 입안에 고인다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

살구처럼, 양산의 가늘고도 긴 현을 두드리던

살구처럼, 하얀 천에 떨어져 뛰어다니던 살구처럼,

추억은 마룻바닥을 뛰어 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