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나무와 나는 - 김병호
최다원
2022. 8. 15. 19:03
나무와 나는 - 김병호
나무가 멀리로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
제 몸에 쟁여놓은 기억이 많아서이다
얼룩종달이새의 첫울음이나
해질녘에서야 얇아지는 바람의 무늬
온종일 재잘대는 뒷도랑의 물소리들
나무는 그것들을 밤새 짓이겨 동그랗게 말아 올린 다음
오돌톨한 뿌리에 불끈 힘을 주고선
새벽녘, 달 지고 해 뜨기 전의 막막한 시간을 기다려
온몸을 털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멀리로 돌아온 그것들이
하루내 팽팽해진 연두빛 그늘로 몸을 바꿔
나무의 부르튼 발목을 보듬기 때문에
나무는,
차마 멀리로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이제
밤마다 제 안을 헐어 바람을 내보내고
어두운 날개의 날것들에게 제 몸을 내어준다
그리하여 그대의 저녁 햇살 속에 서있는
잎 많은 나무가, 게으른 해시계처럼
어둠의 부피를 줄였다 늘릴 때
나무가 거느린 빽빽한 어둠들이
그대의 기억을 흔들 때
혹은 그것들의 수척한 눈빛이
그대 언저리에 닿을 때
가늘게 금이 간 창문 안에서
오후의 해거름을 지키고 있는 나는
여전히 그대를 기억하는 것이다.
나무가 제 이름을 가지에 걸쳐놓고
먼 곳을 그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