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등불 하나 걸어 놓고 싶은 밤 - 윤인환
최다원
2023. 3. 24. 19:09
등불 하나 걸어 놓고 싶은 밤 - 윤인환
등불 하나 걸어 놓고 싶다.
어둠을 밝히고
나를 밝히는 그 은은한 빛으로
조용히 목욕하고 싶다
그 불빛을 쳐다보며
질곡의 세월을 되뇌어 보며
그 등불의 음영에
내 일상을 잠시 뉘어 보고도 싶다
홀로 빛남이 쑥스러워지면
홀로 있음이 허전해지면
한 곡조 조용한 음악을 곁들여 놓고
가지런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합장하고도 싶다
내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그것
그것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빌고만 싶다
등불하나 걸어 놓고
그 불빛에 기대어 저만치 걸어가는
내 지친 사랑을 조용히 지켜 보고도 싶다
바람결에 뭍어오는
추억의 파편을 움켜쥐고
비라도 내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밤
등불 하나 걸어 놓고
젖을대로 젖어 버린 내 영혼을
포도를 자유롭게 뒹굴던 가을의 낙엽처럼
가볍게 말리고 싶다
누구나
슬픔 한자락 끌어 안고 산다지만
오늘은 하냥 슬프다
서러워진다
아!
허공을 춤추던 내 명징한 순수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