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뿌리 - 한여선

최다원 2024. 3. 11. 19:30
뿌리 - 한여선



잊고 있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 땅속에서 크는 것을.
태어나 처음
흙에 발 딛고 선 묘목이었다가
부러질 듯 흔들리며 노지의 나무가 되어갈 때
온몸으로 찬 비 맞으며
천둥번개 견디던 밤에도
땅 위의 키, 다만 그것이
내가 가진 힘인 줄 알았기에
잊고 있었습니다.
땅 위의 키만큼 땅속 뿌리 깊어
그나마 모습 갖춘 나무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