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치마를 붙잡고 있느라고 - 이영옥

최다원 2024. 3. 14. 19:02

치마를 붙잡고 있느라고 - 이영옥

 

 

 

바람이 그렇게 세게

부는 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치마를 입고 나왔는데

아무리 치맛자락을 꼭 붙잡아도

부끄러움을 꺼내놓는 바람

이미 발톱 구부러진

바람의 육체는 타협을 몰랐다

 

치마를 붙잡고 있느라고

소지품처럼 지니고 있던

아름다운 환상이 날아갔다

 

치마를 붙잡고 있느라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가방이 흘러내리고

눈썹이 삐뚤어지고

한 쪽 귀가 뜯겨 나갔다

 

치마를 붙잡고 있느라고

약속 시간은 지나가고

나는 실종되었다

 

치마를 붙잡고 있느라고

나를 기다리던

당신이 지워졌다

 

치마를 붙잡고 있느라고

번개에게 목이 그인 하늘이

살해되는 줄 몰랐다

 

치마를 붙잡고 있느라고

내가 영원히

사라지는 줄도 몰랐다

겨우 치마를 붙잡고 있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