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인간에 대한 결례 - 김재진
최다원
2024. 12. 25. 18:49
인간에 대한 결례 - 김재진
못을 박는지 집이 소리를 지른다.
빈집.
아이들도 없는 빈 공간에 눌려 나는
으스러지는 소리 하나 내지 못한다.
비어 있다는 말은 결코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제 나름의 기준으로 햇살을 통과시키고 있는
저 간유리는
사사건건 나를 검열하고 있는데
비어 있다는 말은 그럼 대체 무슨 말인가?
간단하게
차 있다는 말의 반대일 뿐이라 중얼거리며 나는 이제
모든 시비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아니
벗어나고 싶은 게 아니라 이미 벗어나 있다.
일탈한 자가 감내해야 하는 몇 가지의 굴욕
그것들에 이미 나는
익숙해지기로 작정하지 않았는가.
완강한 콘크리트의 저항에 부딪혀
긴 못 하나 휘어지는 지금
새파란 불꽃 튀기며 나의 시선은
비어 있는 공간마다 못 박힌다.
인간이 왜 밥을 먹고사는지
비로소 나는 알 것 같다.
왜 밥만 먹곤 인간이 살 수 없는지.
비어 있는 것들은 누른다.
온통 못 치는 소리 가득한 빈집 지키며
한 그릇 밥을 위해 버려야 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예의를 나는
즐기기 위해 기억해낼 뿐
살아간다는 말은 결코 비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 것도 비어 있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