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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朴杏山全之宅有題 -도곡 홍우기

최다원 2016. 4. 10. 21:19

 

 

 

 

朴杏山全之宅有題

 

11世 광정공[洪奎, ?~1316]은, 초명(初名)이 문계(文系), 자는 미루(彌樓), 시호가 광정(匡定)이다. 1270년 원에서 원종(元宗)이 귀환할 때 임유무(林惟茂)가 왕을 배척하고 항전태세를 갖추자, 공은 송송례(宋松禮)와 함께 무인정권의 마지막 실력자 임유무를 죽임으로써 무인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사람이다. 충렬왕 때에는 원의 매빙사(媒聘使)가 와서 남편이 없는 부녀자 140명을 요구하자, 공은 딸을 원으로 보내지 않으려 머리를 깎았다는 이유로 가산이 몰수되고 해도로 귀양을 갔던 일도 있었다. 나중에 홍자번 등의 청으로 해배되고 가산은 반환되었으나 장녀는 결국 원의 사신 아고대에게 바쳐졌다. 공은 체격이 훤출하고 얼굴이 준수하며 성격도 맑고 온유활달하였다. 아첨배를 멀리하고 불의(不義)를 용납지 않는 호협(豪俠)한 성정이었으며, 거문고와 바둑도 묘경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말달리기와 격구에도 특출하였는데, 모든 것을 버리고 문인 묵객들과 어울리어 글짓기와 글씨쓰기로 세월을 보냈다. 시도 맑고 뛰어나며 호방하였고 글씨에서도 해서(楷書)와 행초(行草)가 뛰어났다. 공에게는 1남 5녀가 있는데, 아들 융(戎)은 중대광․판삼사사(重大匡․判三司事) 남양부원군(南陽府院君)을 지냈고 시호는 장간(莊簡)이다. 장녀는 아고대에게 2녀는 정해(鄭瑎)에게 각각 시집갔고, 3녀는 충선왕비인 순화원비(順和院妃)이며, 4녀는 원충(元忠)과 혼인했고, 5녀는 충숙왕비인 명덕태후(明德太后)이다. 그런 광정공의 좌우명시는 후에 많은 선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何用燒丹苦駐顔 어찌하여 선약(仙藥)으로 젊음을 유지하려 하나?

鬧非城市靜非山 시끄런 곳 성시(城市)가 아니며 고요한 곳 山만이 아니라네.

有人若問長生藥 어떤 이가 장생(長生)하는 약(藥)에 대해 물어온다면

對物無心是大還 사물(事物)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라 나는 말하리.

 

공은 상공의 지위에 오르고 충선왕과 충숙왕의 국구가 되었으며 충혜왕과 공민왕의 외조였으니 당시 그 권세를 짐작할 수 있다. 세력이 있고 지위가 높으며 부유한 곳에는 사람이 모여들고, 빈천한 곳에는 있던 사람들도 흩어지는 것이 세상사다. 하지만, 여기에 집착하기보다 사물에 대해 무심한 것이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장수할 있는 보약임을 공은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시끄러운 곳이 시장바닥만이 아니고 조용한 곳이 산속만이 아니란 것도 공은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장바닥이라도 사물에 무심하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니 고요한 산속과 같고, 아무리 깊은 산속에 살아도 부귀하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임은 공은 익히 알고 있으리라. 권력도 부귀도 명예도 모두가 부질없으니 공은 이러한 문구를 좌우명으로 정해놓고 매일 같이 이를 보며 이를 경계하였던 것이리라.

<朴杏山全之宅有題>는 말 그대로 행산 박전지의 집에서 쓴 시이다.

 

酒盞常須滿 술잔은 항상 가득 채워야 하나

茶甌不用深 다완엔 가득 따를 필요가 없네.

杏山終日雨 행산댁에 하루 종일 물 끓는 소리

細細更論心 세세히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네.

 

여기에 등장하는 박전지(朴全之, 1250~1325)는 고려의 문신으로 호는 행산(杏山)이며 깊은 학식과 온화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충선왕때에 광정원(光政院) · 자정원(資政院) · 사림원(詞林院) 등의 관제개혁이 있었는데, 그중 특이한 것은 왕명의 제찬(制撰)을 맡았던 한림원을 강화하여 인사행정과 왕명의 출납(出納)의 권한을 더한 사림원이었다. 이 사림원은 반원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관장한 사람이 바로 박전지 등의 인물이었다. 또한 “杏山春色照人明 竹澗秋聲徹骨淸 莫道舊家餘慶耳 森森玉笋是門生(행산의 따뜻한 인품은 사람을 밝게 비추고, 대숲 냇물의 가을소리처럼 뼛속까지 맑구나. 옛집의 남겨진 복일뿐이라고 말하지 마라. 훌륭하고 많은 인재 그의 문생들이니.)”이라는 목은 이색의 시를 봐도 박행산의 학문과 인품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바로 그가 사귀는 친구를 보라고 했으니, 이러한 박행산과 교우한 광정공도 당시 어떠한 사고를 하고 있었는지를 우리는 짐작해볼 수 있다.

시를 읽다보면 광정공은 행산의 집에 자주 찾아가 술을 마시고 차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酒盞常須滿 茶甌不用深’을 읽다보면 고금의 심정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술을 마실 때면 잔을 채워야 한다고 호기를 부리지만 차를 마실 때에는 지금도 그렇지가 않다. 술과 차, 잔과 사발,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 진한 향기와 그윽한 향기, 혼미해지는 것과 맑아지는 것이 미묘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는 채워야 한다는 술잔보다 반드시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다완(茶碗)에 무게중심이 있다.

‘杏山終日雨’를 처음에는 “행산 박전지의 집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라고 해석하였다. 일단 박전지의 집에 들러 술과 차를 마셨으나 하루 종일 비가 내리니 집에 갈 수가 없어 별 수 없이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분위기이다. 정황상으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를 시로 승화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분위기가 이미 식상해져 있기 때문이다. 술병을 기울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대작을 하는 경우든, 찻잔을 기울이며 담박하게 우정을 나누는 경우든 비에 발이 묶여있는 경우라면 청춘남녀가 함께 있는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자연스레 맥이 빠진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시를 읊조리니 문득 종일토록 들리는 빗소리에 생각이 멈춰 선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은 찻물이 끓는 과정을 하안(蝦眼) ․ 해안(蟹眼) ․ 어목(魚目) ․ 용천연주(湧泉連珠) ․ 등파고랑(騰波鼓浪) ․ 세우(細雨)의 단계로 나눈다. 이를 세분하여 말하면, 하안(蝦眼)은 기포(氣泡)가 '새우의 눈'처럼 탕관바닥에 보얗게 붙어 있을 때로 물에서는 '미미성(微微聲)'이 있는 경우이다. 해안(蟹眼)은 바닥에 공기 방울이 커져서 위로 올라오다가 중간에 '게눈'처럼 사라지면서 날카로운 초성(初聲)으로 바뀌는 단계이다. 어목(魚目)은 공기 방울이 '물고기의 눈'처럼 커져서 물 표면까지 올라오는 때로 날카로운 초성(初聲)의 소리가 본격적으로 크게 들리는 시기이다. 용천연주(湧泉連珠)는 물 표면으로 공기 방울이 구슬을 꿴 듯 줄줄이 샘물 솟는 듯 힘있게 올라오는 상태로 이때는 진성(振聲)이 되어 굴러가는 듯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난다. 등파고랑(騰波鼓浪)은 물 표면이 소용돌이 치고 거품을 내며 심하게 솟구쳐 오르며 끓는 형태로, 말을 몰아가는 듯한 취성(驟聲)에서 전나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회성(檜聲)으로 바뀌는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세우(細雨)는, 물 온도가 높아지면 가는 비가 내리는 수면처럼 잔잔히 출렁거리는데 이때는 잔잔한 무성(無聲)의 물결소리만 나기 때문에 붙여진 단계이다.

이렇게 가는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것처럼 찻물이 끓고 있는 것이다. 하루 종일 물이 끓고 있으니 계속하여 차를 마실 것이요, 좋은 친구와 함께하니 차의 맛도 좋을 것이다. 단번에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고 취한 김에 말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담담하게 하루 종일 마음속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자세히 나누는 분위기다. 小人들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고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다고 했던가? 이 시를 읽다보면 광정공은 박행산과 만날 때 술보다는 차를 즐겨 마셨고 격이 없이 지냈던 친한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말기는 이들이 정치의 주역이었지만 그 시대는 참으로 암담했다. 무인정권으로 인해 왕권이 미약해졌으므로 왕권을 회복하고 무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원에 의지했으나 너무나 지나쳤음을 알게 되었다. 원에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본을 정벌한다는 명목으로 원은 고려에 막대한 양의 군량 ․ 함선 ․ 군사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몽고를 다녀온 왕이 변발(辯髮)과 호복(胡服)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재위 중에도 원나라에 여러 차례 소환을 당하기도 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몽고에서 부녀자를 요구하자 딸을 보내지 않으려 딸의 머리를 깎았으나 결국 아고대에게 바쳐지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지경이니 답답하고 힘겨운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 울화통이 치미는 심정을 누구와 이야기할 것인가? 그러나 살다보면 허물없이 속마음까지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안다. 화로에서는 쉴 새 없이 찻물이 끓고 그 담박한 다향사이로 담박한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그림 같은 정경이다.

출처 : 묵향마을
글쓴이 : 홍우기/陶谷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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