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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

by 최다원 2022. 5. 2.

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
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
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
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
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
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 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쳐 주고나서, 얼마의 시간
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
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
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
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나라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중에 기막
힌 감회로 남은 것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
면, 두고두고 자산이 되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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