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시론245 비평과 해석학적 중독 비평과 해석학적 중독 -해석이 상징이라면, 비평은 또 다른 상징의 생성이다// 변의수 비평은 약호의 사전서가 아니다. 하지만, 비평은 종종 사전이 되고자 애를 쓰며 시 텍스트로 하여금 사전적 약호 체계의 산물일 것을 주문하는 것 같다. 시인은 질료적 기호체로서의 텍스트를 만들 뿐이지 의미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20세기 초엽 카시러는 표현적 또는 재현적 상징 보다 순수 의미작용의 상징을 가장 수월한 단계로 보았다. 카시러의 순수 의미작용이란 소쉬르가 언어 기호학의 제1의 원리로 삼았던 '자의적’(arbitrary) 결합의 방식 그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카시러의 ‘순수의미 작용으로서의 상징’이 뒤샹이 행하였듯 눈 치우는 삽에다「부러진 팔에 앞서서」와 같은 전혀 무관한 자의적 제목을 붙이는 식의, 시적 .. 2022. 3. 28. 문학'과 '연애' 문학'과 '연애' 김행숙 한밤을 내내도록 머리맡 지붕 위에서 퍼득이며 보채어 우는 안타까운 울음소리에 나도 전전히 잠 한잠 못 이루고, 날이 밝아 일어나자 창을 열고 내다보니, 지붕 위 공중 기ㅅ대 끝 햇빛에, 어제 저녁 내리우기를 잊은, 울다 지친 아이처럼 까부러져 걸려 있는 물질 아닌 심상 하나 ―― 유치환, 「심상心像」 1 ‘연애’가 문학적인 사건으로 간주되기 시작하였던 때로 거슬러가 보면, 신청년들이 열렬하고 심각하게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풍경과 만나게 된다. 1910년대 말 1920년대 초는 “예술이냐? 연애냐?”(염상섭, 「암야暗夜」)라는 외침이 터져나오던 때였다. 한편에선 모든 소설과 시가 연애소설 연애시가 되어버렸다는 냉소도 있었지만, 이 냉소를 오히려 속된 것으로 치부할 수 있었을 만큼.. 2021. 10. 11.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김 현 (1942~1990) ●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문학은 써먹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며 부를 축적하게 하는 수단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써먹지 못하는 것을 써먹고 있다.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이 우리는 문학을 함으로써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그러나 문학은 유.. 2021. 9. 27. 시는 어디서 오는가? 시는 어디서 오는가? -시적 발상 장옥관 시창작 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원천적 단계과 의미화 단계, 형상화 단계. 원천적 단계는 선천적, 후천적 차원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시창작 교육에서 다룰 수 있는 부분은 교육에 의해 계발될 수 있는 후천적 차원. 후천적 차원은 독서와 체험, 사색의 세 범주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화 단계를 다른 말로 하면 시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알맹이(관념/사상, 감정 따위)가 있어야 시를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허긴 알맹이 없는 시가 시중에 많이 나돌고 있다. 시가 그럴듯한 말로 아름답게 치장하거나, 설익은 관념을 그대로 노출하거나, 넋두리, 푸념에 가까운 질펀한 감정의 잔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선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 2020. 11. 10. 이전 1 2 3 4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