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드는 일 - 김종제
제 목숨
끝까지 토해내지 않는 생은
붉다는 말 못하지
제 마음
밑바닥까지 드러내지 않는 생은
노랗다는 말 못하지
제 몸
마지막 뼈까지 바치지 않는 생은
진정한 색으로 물든다는 말 못하지
누군가에게
제 모든 것을 주었을 때
단풍 들었다고 하는데
절벽에 뿌리 내린 나무와
어느새 낯빛은 비슷해지고
슬며시 건네준 손길은
불처럼 뜨거워지는 것이네
꽃도 산산이 흩어지고
열매도 뚝뚝 떨어지고
우리가 단풍 들었을 때
비로소 암호가 풀리듯이
서로를 잘 읽을 수 있는 것이네
감춘 상처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네
그러니까 가을산에서
단풍 드는 일이란
한 생의 눈빛이
한 생의 눈빛으로 옮겨가는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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