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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더러운 시 - 황규관

by 최다원 2023. 9. 1.

더러운 시 - 황규관



정치시라면 한때 넌더리를 낸 적도 있지만
정치가 더러우니 정치시는
정치와 무관한 언어로 써야 한다는
나의 무지를 조롱하는 언어 앞에서
나는 너저분한 생활을 변명 삼았다
타락마저 엉거주춤 일삼은 시간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일주일째 우리 부부는 침묵중이다
허무를 모르는 어떤 주장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정치가 더러운 것이라 배운 탓에
지금껏 분노는 알았지만, 식구들의 눈에는
단지 허름한 가장이었을 뿐
그러나 더러운 게 피가 된다
볕이 꺼지는 순간에야 사랑은 시작된다
박사학위 논문 장정처럼 모호한 이야기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러므로 욕은 아니다
다만 이제 멋진 정치시를 쓸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 진창을 모른다
이미 진창인데 아니라고 우긴다
그래서 핏물이 밴 정치시 한줄 못 쓴다
끝내 완성되지 못할 정치시를
아내의 외면도 너끈히 견뎌내는
더러운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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