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들의 수다 - 오영록
소리의 귀를 닫아야 한다는 말에
끝 숨까지 참다 보니
살고 싶다는 간절한 애원이 들렸지
그때부터 이상한 귀가 열렸어
새벽바람을 모아 이슬을 만드는 풀잎 소리와
꽃망울 열리는 소리가 책장 넘어가 듯 들렸고
건기에는 허기진 뿌리의 갈증도 들렸지
어쩌다 여우비라도 오면 모두가 춤을 추었는데
그것은 목마름의 해소가 아니라
빗방울들의 수다에 흥이 났던 거지
비가 오는 모습은 마구 흩뿌리는 것 같아도
바람위에 앉아 눈처럼 정해진 길로 오고 있었지
원추형에 긴 꼬리가 있어
자궁을 향하는 홀씨처럼 흔들리고
그 꼬리가 바람을 날릴 때마다 소리가 났지
그것이 빗방울의 언어였던 거야
양철지붕에서 혹, 갈대밭에서
초원의 누 떼처럼
벌떼처럼 무리지어 다니며
수다를 떨지
싯싯싯 숫숫숫 사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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