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내시경 - 이화은
이상한 기념 촬영이었다
자면서 사진을 찍다니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내 표정을 관리 할 수 없는데
책임질 수 없는데
그날 위장과 대장은 아마 질질 침을 흘렸거나
씰룩거렸거나 잠결에 힘없는 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그런 것도 기념이 된다니
사진을 찍는다는 건 결국 한 순간을 들킨다는 말이다
힌트 같은 것
눈 깜짝 할 사이를 보여주며
크고 많은 걸 상상하라는,
여행지에서 찍은 낯선 표정 하나로 우리는
추억이라는 거대한 국가에 무상출입하기도 한다
강물의 허리를 베듯
흘러가는 것
가고 오지 않는 것들을 잠깐, 오래 잡아두고 싶은
참으로 욕심 없는 슬픈, 마음의 욕심이다
그날의 꿈 없는 잠을 나는
온몸으로 오래오래 기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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