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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서.화론

피카소

by 최다원 2011. 10. 4.

도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던 62세의 피카소는 1943년 어느 날 식당에서
21살의 프랑수와즈 질로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피카소의 첫아들인
파울로보다 나이가 어렸던 프랑스와즈는 피카소와의 사이에서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는다. 또한 날카로운 지성을 지녔던 바로 전
연인, 도라 마알은 피카소와의 이별로 인해 정신착란증을 일으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불행한 여인이 되었다.

피카소는 공산당에도 입당하게되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예술가가 되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위대한 인물이라는
명성은 얻었지만 예술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도외시되었다. 1949년
공산당이 평화운동을 상징할 수 있는 포스터를 피카소에게 의뢰한다.
그 포스터 한 중앙에는 한 마리의 비둘기가 앉아 있었다. 이 후 피카소가
그린 비둘기는 전 세계에서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1950년과 1962년,
두 차례에 걸쳐 레닌 평화상을 수상하게된다.

70대의 피카소는 도자기와 도기로 유명한 발로리스 시를 발견하고 흥분하다.
새로운 장르에 손을 댄다는 설레임 때문이였다. 피카소의 마지막 여자 쟈클
린은 도자기공장 관리인의 조카로써 공장의 뒷일을 보살피고 있었다. 젊은
이혼녀였던 쟈클린은 피카소를 필사적으로 유혹하여 결혼에 성공한 피카소
에게는 헌신적인 여자였다. 1961년 80세의 피카소는 쟈클린과 발로리스
시청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그 날 신문을 온통 장식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고령에 나이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는 이 전의 대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하였다.
옛 거장들이 작품을 풍자하고 모방하는 궁극적 목표는 어느 장르이건 같았다.
고전적 규율과 겨루기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모방하기, 그 결과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피카소는 들라크루아의 <알제의 여인들>
14점, 벨라스케스의 <메닌느가의 사람들> 44점,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27점 등 과거의 그림을 재해석함으로써 전통과의 대화를 나누었다. 1978년
4월 8일 92세의 나이로 남프랑스 무쟝의 별장에서 사망하였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 다양한 스타일로 예술을 바꾸다 : 약 2만점의 작품(유화. 조각. 판화. 도예. 무대의상
                                       무대세트등).
* 청색시대 : 쓸쓸하고 차가운 청색
* 장미빛 시대 : 여인과의 사랑으로 밝지만 불안한 그림자 느껴지는 시대
* 큐비즘이 준 충격 : 자신을 해방을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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