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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시론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 : 그 아홉 가지 유형>

by 최다원 2010. 1. 12.

 


그러면 여기서 우리들 자신은 사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반성적으로 점검해보자. 지금 우리 앞엔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고 가정한다. 그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차이를 단계화해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이 나올 수 있다.


① 나무를 그냥 나무로 본다.

② 나무의 종류와 모양을 본다.

③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④ 나무의 잎사귀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⑤ 나무 속에 승화되어 있는 생명력을 본다.

⑥ 나무의 모양과 생명력의 상관관계를 본다.

⑦ 나무의 생명력이 뜻하는 그 의미와 사상을 읽어본다.

⑧ 나무를 통해 나무 그늘에 쉬고간 사람들을 본다.

⑨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위에 든 아홉가지 유형 중에서 당신의 경우는 어느 단계에 속하고 있는가? ①에서 ④까지는 나무의 외형적 관찰이지만, 일상적 상식적 차원에 있어서의 우리는 그나마도 ①과 ②정도의 눈으로 나무를 보고 있다. ③과 ④는 그보다 한걸음 앞선 태도이긴 하지만 역시 나무의 외형적 관찰이며, 따라서 그다지 깊이있는 관찰이라 할 수가 없다. ⑤에서 ⑦까지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나무의 외형이 아니라 그 내면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일상적 상식적 차원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무의 모습이 우리 앞에 드러난다. 나무의 생명력이라든지 또 그 생명력의 의미나 사상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대상인 것이다. 한데도 이 단계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나무의 모양으로 형상을 얻고 있다. 그리하여 생명력이나 사상으로 바뀌어진 나무의 그 변용은 물론 상상력의 소산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한 나무는 그 의미의 측면에 있어서도 깊이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⑧과 ⑨의 단계에 이르면 나무는 다시금 비약적 변용을 이루게 된다. ⑤∼⑦의 단계에 있어서는 그래도 아직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나무가 이번에는 자리까지 옮기게 되는 것이다. 「나무 그늘에 쉬고간 사람들」을 보게 될 때의 나무는 지금의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이미 다른 자리에 서 있다. 그곳은 그렇게 쉬고간 사람들이 쉬는 그동안의 이런 일 저런 일을 생각해 본 인생의 갖가지 사연이 얽혀 있는 자리인 것이다.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보는 ⑨의 단계도 나무가 보다 발전적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임이 분명하다. 연장선을 그어 확대시키면 인생 만사와 우주의 삼라만상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이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인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이처럼 광대한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 기적을 낳는 원동력이 상상력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상상력을 누구보다도 많이 가진 사람이다.

시인이 아니라도 이 상상력은 사람들에게 인류 전체의 문화와 역사를 변혁시킬 만큼 엄청난 발견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발견이란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본다는 뜻에 다름아닌 것이다.



위의 글은 (주)문학사상사 이형기 지음 <현대시 창작교실-당신도 시를 쓸 수 있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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