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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계산에 대하여 - 나희덕

by 최다원 2022. 2. 28.

계산에 대하여 - 나희덕

 

 

계산을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모든 계산은

부정확하지는 않아도

불가능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계산을 하는 동안에도 자본은

운동을 멈추지 않기 떄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구좌에선가

이자가 올라가고 있고

수수료와 세금과 연체료가

빠져나가고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계산은 불어가거나

녹아가고 있다

 

모든 존재는

언덕 아래로 굴러내리는

눈덩이와 같으니

모든 계산은 그 눈덩이의

지름을 재는 일과도 같다

 

계산을 한다는 것은

순간을 환산할 수 있다는

장담처럼

영원을 측량할 수 있다는

믿음처럼 어리석은 일,

계산을 마치는 순간

그 수치는 돌덩이가 되어

나를 누루고 구르는 동안

욕망의 옷을 입기 시작할 것이다

 

부디 계산을 마치지 말자

그래도 우리는 그 위에

꽃 피우며 잘도 산다

돌 위에 뿌리내린 풍란처럼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제법 향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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