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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풀밭에서//조지훈

by 최다원 2022. 9. 13.





바람이 부는 벌판을 간다. 흔들리는 내가 없으면
바람은 소리조차 지니지 않는다.
머리칼과 옷고름을 날리며 바람이 웃는다.
의심할 수 없는 나의 영혼이 바람이 되어 흐르는 소리.

어디를 가도 새로운 풀잎이 고개를 든다.
땅을 밟지 않곤 나는 바람처럼 갈 수가 없다.
조약돌을 집어 바람속에 던진다.
이내 떨어진다.
가고는 다시 오지 않는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기에
나는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풀밭에 쓰러진다. 던져도 하늘에 오를 수
없는 조약돌처럼 사랑에는 뉘우침이 없다.
내 지은죄는 끝내 내가 지리라.
아. 그리움 하나만으로 내 영혼이 바람속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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