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출구가 있는 내 방은 - 정복여
집을 나온 꿈이 아침 위에 앉아 있다
잠이 보내온 반투명한 물방울들
둥근 표면 위에 그려진 꿈의 표정들이 보인다
원의 안쪽에 어둠을 품은 빛나는 저 눈동자들
내가 현관을 나설 때 물방울들은 따라나온다
땅에 구를수록 흙빛이 짙어지는 꿈들은
걸음 걸을 때마다 소리를 내는 둥근 사슬이다
사람들은 그들도 모르게 내 꿈을 밟고 지나간다
밟힌 꿈들은 모양이 변하여 매달려 있다
회전문 틈에 끼였던 사슬이 일그러지며 무거워진다
나는 정오의 어느 골목쯤에서 이들을 버리기로 한다
현세약국을 돌아 나오다 재빠르게 벽에 몸을 붙인다
방심한 꿈을 따돌렸다 생각했을 때
꿈의 사슬들은 다시 발목을 잡는다
나는 하루 동안 더욱 무거워진 꿈을 들고 돌아온다
꿈의 출구가 있었던 내 방은
이런 뚱뚱한 꿈들로 가득하다
밤이 지날 때마다 집을 나온 꿈들은
이제 커다란 몸으로 출구를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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