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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너도 추우면 우는구나 - 한상길

by 최다원 2023. 3. 25.

너도 추우면 우는구나 - 한상길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그 길 따라가면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바람이 지나 온 벌판엘 가 보았다

바람이 지나간 벌판엔
서로를 부비다 지쳐 바싹마른 잡초들만 누워 있고
둔덕 아래 흰 눈은 서로를 꼭 껴안아도
떨고 있다

온종일 매연으로 배를 채운 철새들은
바람 부는대로 굴러가다
게시판 구인란 종잇장 위로 몇몇의 눈들이
초저녁 별처럼 떠 있다

방향 잃은 새들은 몇잔의 소주로 추위를 꺾으며
서로의 눈빛을 지그시 깨물다
막차로 떠난 사람들이 두고간 약간의 온기 위로
몇장의 신문이 깔리고
식어가는 몸뚱아리 위로 덮이는 몇장의 신문은
수의처럼 차갑기만 한데
직선으로 달려온 바람도 추우면
역사에 부딪쳐 부서지고 아파하는지
전선에 걸려 우는 바람을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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