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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꽃이 필 때 - 전동균

by 최다원 2023. 6. 30.

꽃이 필 때 - 전동균



몇 줄기 꽃대가 간신히 밀어올리는 숨찬 벼랑에
띠집 한채 짓는다
높고 가파른 세상의 길들 단숨에 끊어 버리고
지나가는 햇빛과 바람을 불러
세간을 들인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여자의 젖은 눈을 바라다 보듯
사방이 다 트인 흙빛 창을 내고
참 오래 견딘 밤의
딱다구리, 딱다구리 울음을 들을 적마다
내 안에서 공명하던 악기소리를
액자에 넣어 걸어두면
붉게 타는 폭포를 헤엄쳐 오르는 물고기처럼
온몸 뒤틀면서 활짝 피어나는
寂滅의 깊은 방에서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한 아이가
신비한 말의 첫 마디를 배우며
더듬더듬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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