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 성영희
폭설 그친 양지마을
군데군데 눈 녹은 골목길을
한 노인 위태위태 걷고 있다
볕뉘도 없이 뉘엿,뉘엿,
마른 목숨 여미며 복지담당 찾아 간다
급히 달리던 중국집 오토바이
늙은 골목을 통째로 들었다 놓았다
해님이 잠깐 걸음을 멈추었으나
녹다 만 적막이 사방으로 축축하다
바짝 꼬부라진 저 고행
마침내 창가에 앉았다
한 달치 밥을 기다리는 거룩한 순간
행여 바닥에 닿을까
살짝 들어 올리는 치마폭에서
방긋방긋 봄꽃들이 피어올랐다.
패일대로 패여
더 이상 패일 곳 이라고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주름위로
겨울 볕,
참 공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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