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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풀잎​ - 이기철

by 최다원 2023. 10. 9.

풀잎​ - 이기철

 

 

 

초록은 초록만으로 이 세상을 적시고 싶어한다

작은 것들은 아름다워서

비어 있는 세상 한 켠에 등불로 걸린다

아침보다 더 겸허해지려고 낯을 씻는 풀잎

순결에는 아직도 눈물의 체온이 배여 있다

배추값이 폭등해도 풀들은 제 키를 줄이지 않는다​

그것이 풀들의 희망이고 생애이다

들 가운데 사과가 익고 있을 때

내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만의 영혼을 이끌고

어느 불 켜진 집에 도착했을까

하늘에서 별똥별 떨어질 때

땅에서는 풀잎 하나와 초록 숨 쉬는

갓난아기 하나 태어난다

밤새 아픈 꿈꾸고도 새가 되어 날아오르지 못하는

내 이웃들

그러나 누가 저 풀잎 앞에서 짐짓

슬픈 내일을 말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따뜻한 방을 그리워할 때

풀들은 따뜻한 흙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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