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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밤에는 어둠만 있는 줄 알았다 - 우영규

by 최다원 2024. 1. 2.
밤에는 어둠만 있는 줄 알았다 - 우영규        



나는 밤을 부르지 않았다
내밀한 어둠의 속을 내가 알 리가 없다
어둠을 더듬으며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밤이 소란스러워져 새벽으로 갈 때까지
모르는 척하며 기다렸을 뿐이다

나는 어둠을 오라고 하지 않았다
무심코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밤으로 걸어갈 뿐이다
밤에는 바람도 와 걷고 있고
산도 내려와 걷고 있고
심지어 노숙자의 발길도 와 있다

밤에는 어둠만 있는 줄 알았다
이제 밤이 왜 오는지를 알겠다
부르지도 않은 어둠이 왜 오는지 알았다
도시를 지키느라 피곤한 산이 쉬고
아픔을 싣고 떠나가는 바람이 쉬고
노숙자의 신음이 바닥에서 쉬고
슬픔을 잠재우기 위해 어둠이 오고
어둠과 빛이 상접한 새벽으로 가기 위하여
밤은 오고야 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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