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참 무식하시다 - 박제영
어머니는 무식하시다
초등학교도 다 채우지 못했으니 한글 쓰는 일조차 어눌하시다 아들이 시 쓴답시고 어쩌다 시를 보여드리면 당최 이게 몬 말인지 모르겠네 하신다 당연하다
어머니는 참 억척이시다
열일곱 살, 쌀 두 가마에 민며느리로 팔려와서, 말이 며느리지 종살이 3년 하고서야 겨우 종년 신세는 면하셨지만, 시집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요, 시어미 청상과부라 시집살이는 또 얼마나 매웠을까, 그래저래 직업군인인 남편 따라 서울 와서 남의 집살이 시다살이 파출부살이 수십년 이골 붙여 자식 셋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보냈으니, 환갑 넘어서도 저리 억척이시다 이번에 내 시집 나왔구만 하면, 이눔아 시가 밥인겨 돈인겨 니 처자식 제대로 먹여 살리고는 있는겨 하신다 당연하다
무식하고 억척스런 어머니가 내 모국어이다 그 무식한 말들, 억척스런 말들이 내 시의 모국어다 당연하다
지금까지 써 온 수백편 시들을 전부 모아 밤새 체를 쳤다 바람같은 말들, 모래같은 말들, 다 빠져나가고 오롯이 어, 머, 니,만 남았다 당연하다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려진 벽시계의 침묵 - 노홍균 (0) | 2024.02.02 |
---|---|
사랑할 수 없음은//이정하 (0) | 2024.02.01 |
저울의 힘 - 전남진 (0) | 2024.01.29 |
여기저기 - 최영구 (1) | 2024.01.26 |
처음처럼 - 안도현 (0) | 2024.01.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