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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누가 우는가 - 나희덕

by 최다원 2024. 2. 4.

누가 우는가 - 나희덕

 

 

 

바람이 우는 건 아닐 것이다

이 폭우 속에서

미친 듯 우는 것은 바람은 아닐 것이다

번개가 창문을 때리는 순간 얼핏 드러났다가

끝내 완성되지 않는 얼굴,

이제 보니 한 뼘쯤 열려진 창 틈으로

누군가 필사적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다

울음소리는 그 틈에서 요동치고 있다

물줄기가 격랑에서 소리를 내듯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좁은 틈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창문을 닫으니 울음소리는 더 커진다

유리창에 들러붙은 빗방울들,

가로등 아래 나무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

저 견딜 수 없는 울음은 빗방울의 것,

나뭇잎들의 것,

또는 나뭇잎을 잃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부딪치는 나뭇가지들의 것,

뿌리 뽑히지 않으려고, 끝내 초월하지 않으려고

제 몸을 부싯돌처럼 켜대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창 밖에 있다

내 안의 나무 한 그루 검게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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