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일의 부질없음 - 김재진
의자왕의 삼천 궁녀처럼
치마 뒤집으며 뛰어내리는 물방울들
물보라 하나 일으키지 않는 그것들을 다시
폭포라 이름 부를 순 없다.
누구는 그 아래 득음得音을 위해 목 갈랐다지만
한때의 풍문
바위에 깨진 이마 싸매며 물방울들은
쉬 마르거나
속 보이는 웅덩이로 몸을 숨긴다.
갑자기 실명한 사람들이 봐버린
깜깜한 절벽 밑으로도 떨어지고 있을 꽃 이파리
흐르는 눈물 뺨뺨이 적시며
한사코 기어오르는 담쟁이의
무모한 저 집념은 어디로 갈 것인가.
부질없는 격정에 다친 폭폭는 이제
스스로 낙차를 조절할 줄 안다.
세파에 둥글어진 바위와
굴곡의 삶 연명하고 있는
틈새의 늙은 저 소나무
실연의 상처 내다버린 벼랑 끝은 더 이상
유혹적이지 않다.
눈 먼 세월에 헛디뎠던 발 들여놓으며
이제 더 방황하지 않고 멈추어 있는 시계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때의 타오르던 증오로 말라버린
물길 위로 하늘이 비친다.
사랑한다는 일의 부질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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