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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밤, 바람 속으로 - 나희덕

by 최다원 2025. 5. 8.

밤, 바람 속으로 - 나희덕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별들이 멀리서만 반짝이던 밤 

저는 눈을 뜬 듯 감은 듯 꿈도 깨지 않고 

등에 업혀 이 세상 건너갔지요. 

차마 눈에 넣을 수 없어서 

꼭꼭 씹어 삼킬 수도 없어서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논둑길 뱀딸기 밑에 자라던 

어린 바람도 우릴 따라왔지요 

어떤 행위로도 다할 수 없는 마음의 표현 

업어준다는 것 

내 생의 무게를 누군가 견디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긴 들판 건너게 했지요. 

그만 두 손 내리고 싶은 

세상마저 내리고 싶은 밤에도 

저를 남아 있게 했지요. 

저는 자라 또 누구에게 업혔던가요. 

바람이 저를 업었지요. 

업다가 자주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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