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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커피를 내리며 - 허영숙

by 최다원 2026. 2. 25.

커피를 내리며 - 허영숙

 

 

 

커피를 내리는 일처럼  

사는 일도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둥글지 못해 모난 귀퉁이로  

다른 이의 가슴을 찌르고도  

아직 상처를 처매 주지 못했거나  

 

우물 안의 잣대 품어 하늘의 높이를   

재려한 얄팍한 깊이로  

서로에게 우를 범한 일들  

새벽 산책길 이제 막 눈을 뜬 들풀을  

무심히 밟아 댄 사소함까지도  

질 좋은 여과지에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는 일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것처럼  

마음과 마음의 온도 차이로 성에를 만들고  

닦아내지 않으면 등을 보여야 하는 슬픈 배경

 

가끔은 아주 가끔은  

가슴 밖 경계선을 넘어와서  

눈물나게 하는 기억들  

이 세상 어디선가  

내게 등을 보이고 살아가는  

배경들이 있다면 걸러 내어 향기로 마주하고 싶다.

 

커피 여과지 위에서  

잊고 산 시간들이 따뜻하게 걸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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