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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시론

[스크랩] 나는 왜 시를 추구하는가/ 엄경희

by 최다원 2011. 3. 3.

 

는 왜 를 추구하는가

 

          엄경희 (문학평론가)

 

 

  나는 왜 시를 추구하는가? 굳이 고백하자면, 나는 시를 정서로 배웠고 아픔으로, 슬픔으로 배웠다. 그것이 이십 대에 내가 본 아름다움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고백은 매우 사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예술과의 깊은 만남은 공적 지평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인 관계처럼 개별 작품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비평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감동을 내세우는 태도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객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시를 추구하게 된 최초의 동기가 감동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는 지금도 <감동하시라!>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비평문이 감동비평일 따름이라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지만 아무런 감동 없이 어떻게 수많은 작품들을 읽고 생각하는 일이, 더욱이 작품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가능하겠는가. 해서 감동은, 적어도, 내게 감동은 여전히 시를 추구하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나는 무엇에 감동하는 것일까? 시는 선악을 넘어선 차원 속에 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에 이토록 헌신하는 예술장르가 또 있던가? 목적성이 두드러진 시에서조차 대상에 관여하는 시인의 내면성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 시인은 울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자기를 드러낸다. 시인은 자기 자신을 감출 수 없다, 나아가 그는 인간일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장 문제적인 것으로 대상화한다. 그는 감정을 노출하고 그것을 풍부하게 만든다. 만일 인간적인 감정이 인간의 약점이라면 시인은 위대한 정신에 이르고자 하는 도정 가운데 그 약점과 고뇌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절박한 감정과 그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고독한 예외자에 의해 인간의 감정은 의미부여된다. 그 약점들을 끝까지 자기의 존재론적 지평으로 밀고 가는 자가 바로 시인이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기만하게 하는 것들과 싸우면서 내면적 약점의 순수를 쟁취한다. 이 헐벗은 용기는 고통 속에서 강화되곤 한다. 이것이 나를 감동케 한다.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 신경림,「떠도는 자의 노래」전문(『뿔』, 창작과비평사, 2002)

 

 

  이 허전한 배회에는 삶을 오래도록 지켜본 자의 쓸쓸함이 묻어 있다. 시인은 채워질 수 없는 삶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이렇게 내보인다. 오랜 경륜에도 불구하고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니는 마음은 완성되지 않는다.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미완의 심회 속에 시인은 존재한다. 그는 이미 진리에 도달한 도인과 다르다. 완성을 꿈꾸지만 미완을 사랑하는 자, 이것이 시인의 매력이다. 시인은 늘 과정 중에 활동한다.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천양희, 「뒤편」전문(『너무 많은 입』, 창작과비평사, 2005)

 

 

  삶의 <뒤편>을 보는 자, 그가 바로 시인이다. 성당의 종소리 뒤편에 박혀 있는 간구를 보는 자, 마네킹의 뒤편에 꽂혀 있는 시침의 고통을 보는 자, 그리고 멀고 먼 뒤편의 길을 통과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곡선을 발견하는 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거기에 시가 있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 조정권,「山頂墓地·1」전문(『산정묘지』, 민음사, 1991)

 

 

  시인은 가장 뜨거운 내면을 가지고 추운 곳으로 오르는 자이다. 얼음처럼 빛나는 <山頂>의 고독 속에서 결빙되는 높은 정신의 세계, 그곳에서 시인의 내면은 모든 속물주의를 넘어선다. 그의 고독은 거대한 <침묵>속에서 말(言語)의 生金을 캐낸다.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 1888~1965)는 <무목적적인 침묵은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인 것의 곁에 있다. 그 무목적적인 것이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인 것 곁에 갑자기 나타나서, 그 무목적성으로써 놀라게 만들고 목적 지향적인 것의 흐름을 중단시킨다. 그것은 사물들 속에 들어 있는 만질 수 없는 어떤 것을 강력하게 만들어 주며, 사물들이 이용당함으로써 입게 되는 손실을 줄여준다. 그것은 사물들을 분열된 효용의 세계로부터 온전한 현존재의 세계로 되돌려 보냄으로써 사물들을 다시금 온전한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사물들에게 성스러운 無效用性을 준다. 왜냐하면 침묵 자체가 무효용성, 성스러운 무효용성이기 때문>이라고 침묵에 대해 말한다. 침묵에서 태어난 말이 목적지향적이라면 시는 침묵의 본성처럼 모든 말 가운데 유일하게 무목적적이다. 침묵의 가장 성스러운 자식인 것이다. 바로 이 무목적적 자질이 속물주의의 목적성을 견제하는 정신의 힘이 된다. 이것이 내가 시를 추구하는 이유이다.

 

  인간의 감정이 진보와 무관하듯 시는 낙후하거나 진보할 수 없는 존재 상태를 유지한다. 시의 존재성이 지닌 이 원시적 상태를, 나는 사랑한다.

  그 자체 <있음>이 곧 <좋음>이 되는 시의 존재성!

 

 

- 『현대시학』2010.11월호 '엄경희의 경험의 시학' 중에서 발췌

 

 

 

 

* 엄경희 : 1963년 서울 출생.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저서로 『빙벽의 언어『미당과 목월의 시적 상상력』『질주와 산책』『저녁과 아침 사이 시가 있었다』『숨은 꿈』『한국시의 미학적 패러다임과 시학적 전통』등이 있음.

출처 : 함께하는 시인들 The Poet`s Garden
글쓴이 : 박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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