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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서.화론

[스크랩] Re: 문인화의 시작이 문인들이 달빛에 비친 자연의 그림자를 따라그린겟에서 시작했나요

by 최다원 2011. 10. 9.
  • 문인화의 시작이 문인들이 달빛에 비친 자연의 그림자를 따라그린겟에서 시작했나요
  • [문인화]중국 명말(明末)의 대표적 문인인 동기창(董其昌)이 그의 《화지(畵旨)》에서 제시한 중국 문인화가의 계보에서는 당(唐)나라 때의 시인이며 그림에도 능했던 왕유(王維)를 첫손에 꼽는다. 그후 동원(董源)·거연(巨然)·이성(李成)·범관(范寬)·이공린(李公麟)·왕선(王詵)·미불(米)· 미우인(米友仁) 등을 열거하고, 다시 원말(元末)의 대가로 황공망(黃公望)·왕몽(王蒙)· 예찬(倪瓚)·오진(吳鎭)과 명나라의 문징명(文徵明)·심주(沈周) 등을 들고 있다. 문인화는 처음에 특정한 양식을 갖지 않았으나 ‘원말 4대가’의 출현으로 산수화 양식의 전형이 완성되었다. 이를 남종화(南宗畵) 또는 남화(南畵)라고 하며, 비로소 문인화 특유의 양식이 정착하였다. 한국의 경우, 조선 전기 강희안(姜希顔) 등의 문기(文氣) 넘치는 문인화가가 있었으나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유행하였던 17세기 이후부터 강세황(姜世晃)·이인상(李麟祥) 등의 남종문인화가 나왔고, 조선 후기에는 김정희(金正喜) 같은 대가가 나오기도 하였다. 남종화 남화(南畵)라고도 한다. 북종화(北宗畵)에 대응되는 말이다. 북종화가 화원(畵員)이나 직업적인 전문화가들을 중심으로 경직(硬直)된 선묘를 사용하여 그린 장식적이면서도 공필(工筆)의 그림을 의미하는 데 반하여, 남종화는 대체로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은 사대부(士大夫)가 여기(餘技)로 수묵과 담채(淡彩)를 사용하여 그린 간일(簡逸)하고 온화한 그림이다. 당나라 초기 남북2종설(南北二宗說)은 명나라 때 동기창이 《화지(畵旨)》 《화안(畵眼)》 등 그의 문집 속에서 당대(唐代) 선종(禪宗)에 남 ·북종이 있음을 주목하고, 회화에서도 남 ·북종의 구분을 한 데서 비롯된다. 1. 기원 이러한 구분은 동기창과 동향인으로 친교가 있었던 막시룡의 《화설(畵說)》에서도 대체적인 요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작성한 남종화의 계보에 의하면, 남종화는 그 비조(鼻祖)를 당나라의 문인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왕유(王維)로 삼고, 이후 당말(唐末)의 장로(張路), 오대(五代) 및 송나라 때의 형호(荊浩)·관동(關同)·동원(董源)·거연(巨然)·곽충서(郭忠恕)·미가부자(米家父子:米과 米友仁)를 거쳐 원말(元末) 사대가(四大家:黃公望·倪瓚·吳鎭·王蒙)로 이어지며, 명나라 때의 심주(沈周)·문징명(文徵明) 같은 오파(吳派)의 문인화가들도 이 계보에 속한다. 한편 북종화의 계보는 당대(唐代) 이사훈(李思訓) 부자(父子)의 착색산수(著色山水)로부터 송(宋)나라의 조간(趙幹)·조백구(趙伯駒)·조백숙(趙伯)으로 전해져 마원(馬遠)·하규(夏珪)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남·북종론을 제창했던 동기창은 예림백세지사(藝林百世之師)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문예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니만큼 명시적(明示的)은 아니었지만, 남종화를 존숭하고 북종화를 경시하는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것은 남종화의 정통성을 결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명·청대(明淸代)의 중국에서는 남종화의 전성기를 맞았다. ...더보기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용지니요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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