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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서.화론

[스크랩] 인장소고

by 최다원 2014. 8. 11.

* 印章小考

 

우리 國文字 속에는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등이 있으나,

그중 한자어가 대부분을 차지하여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우리의 말과 글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제대로 문자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한자가 중국의 문자로 우리가 빌어쓰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데

그 옛날 우리의 선조인 東夷族이 중국대륙을 아우르고 호령 하였다는 것은,

실상 한자는 우리 동이족의 문자요, 우리 문자의 역사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생전에 여초선생도 한자는 "東方文字"라 역설 하였고, 진태하 교수는 한자를 "古韓契"이라 주장 하였듯,

한글과 한자는 國文이요 國字이니, "漢字"가 아닌 "韓字"로 표기해야 마땅하고 당연한 사리이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는 서예입문시 부터 대부분 중국자료에 의존하다 보니

이 韓字를 붓과 칼로 표현함에 있어 "中國化" 즉, "文化事大化" 되어 있다고 보는것이 나만의 생각 뿐일까?

 

국제화, 세계화 속에서 또, 서예의 종주국 중국의 영향을 받는것이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느냐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줏대를 세워보고자

오래전 부터 마음속에 간직하였던 한자인장에 대한 나의 작은뜻을 밝혀보니 눌러보기 바란다.

 

(1) 한자인문의 관인과 화폐

 

                                       "總裁之印"의 한자 인문이 사용된 화폐 (1950년~1962년)

 

(2) 한글인문의 관인과 화폐

 

 

                                       "총재의인"의 한글 인문이 사용된 화폐 (1962년~2005년)

 

(3) 최근의 관인과 화폐 인문

                                      

                                           대한민국 (제3대국새)

 

                        

                                           대한민국 (제4대국새)

 

                                             "한국은행 총재"의 인문이 사용된 화폐 (2006년 이후)

     

 

 

위의 인문을 잘 살펴보면

 

제1대국새인 "大韓民國之璽"와 한국은행 화폐인 "總裁之印"의 인문은 한자로 세로쓰기 하였는데,

이는 1962년 이전에는 아직 한글이 나라의 공식문자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인문의 글씨는 중국의 전서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63년 1월부터 사용된 제2대국새인 "대한민국"의 인문과, 

1962년 9월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총재의인"이란 인문의 화폐에서는 가로쓰기로 한글이 사용되었는데

이 시기는 훈민정음이 국보 제70호로 지정(1962년 12월 20일)된 때이기도 하니

한글이 나라의 공식문자로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글인문은 한자의 전서를 그대로 흉내내어 한글의 독창성을 상실하고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에도 맞지않는 조악함을 엿볼 수 있다.

 

또한, 1999년 2월부터 사용된 "대한민국"의 제3대국새에 균열이 생겨 제4대국새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국"자의 받침 "ㄱ"이 한획이냐 두획이냐의 논란이 있기도 하였지만 正音字體를 근본으로 하여 제작 하였고,

2006년 1월 5000원권을 시작으로, 2007년 1월 10000원권과 1000원권의 화폐에는 "한국은행총재"라는

새로운 형태의 인문은 龍歌字體를 근본으로 하고 있으니, 지난날의 잘못됨을 바로 잡았음을 알수있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이렇게 정부의 관인과 화폐는 그시대를 배경으로 변화의 물결에 따라 흘러가고 있는데,

이시대 우리 서예인들의 私印을 살펴보면, 한글사인은 정부와 같이 정음자체와 용가자체를 근본으로 하고 있으나,

한자사인(私印)은 아직도 1962년 이전의 관인과 화폐와 같이 중국의 전서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전서를 근본으로 하는 한자인문의 글씨는 우리 고유의 정통성을 가질수 없고,

한글과 한자의 혼용에 있어서도 훈민정음, 용비어천가의 글씨와는 결코 어울릴수 없는 글씨이다.

 

즉, 우리 고유의 정통성을 세우고 한글과 견주어 대비되는 글씨를 찾아

인장을 새기는 일이야 말로 우리 서예계의 당면과제라 생각 하는데

우리 고유의 정통성을 세울 수 있고 한글과 한자의 혼용에도 어울리는 글씨는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廣開土好太王碑 이다. 많은 학자와 서예가의 연구논문이 있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되겠지만

篆勢와 隸韻이 어우러진 우리 민족의 정기가 함축된 글씨이니 한자 인문은 이 광개토호태왕비의 글씨를

근본삼아 중국 전서의 장점을 받아들임이 옳다고 본다.

 

그동안 우리 서예계는 중국의 전서를 그대로 흉내내어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를 훼손하고 독창성을 상실한 

한글의 인문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은 아니 었을까?

 

10년전 쯤인가 어느 서예과 교수 한분이 우리는 중국의 법첩을 쓰지말고 한국의 법첩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니

대부분의 서예인들은 그 분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른바 썩은미소 즉, 썩소만 날리고,

지난해 학양을 강조하며 고전을 공부 하라는 어느 서예과 교수의 말에는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그 고전이 중국의 고전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것도 중요 하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찌들어 있는 문화사대를 걷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용추산방 주인 석담 최형식 識 -

출처 : 저 울 대 세 상 사
글쓴이 : 저울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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