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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서.화론

장승업

by 최다원 2015. 10. 30.

장승업()은 1843년 헌종 9년에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로 이리저리 떠돌며 자라 그의 출생에 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다만, 장지연의 《일사유사()》에 그의 생애와 사람됨에 관한 기록이 비교적 자세하게 남아 있어 이에 의존할 뿐이다. 《일사유사》에 의하면 그의 본관은 대원()이며 선조는 무반()이었고, 조선 후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를 의식하여 "나도 원이다"라는 뜻의 오원()으로 스스로 칭할 만큼 화가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다.

장승업은 20대 무렵 서울 수표교 부근에 있는 이응헌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며 기거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 공부할 기회가 없어 글자를 못 배운 그는 주인 아들의 어깨너머로 글을 깨우쳤다. 이응헌은 중국의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글씨를 많이 소장하고 있었으며 상당한 재력을 지닌 여항 문인이었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집에 있는 원‧명 이래의 명인들의 서화를 접하고 그림에 눈이 트이게 되었다. 우연히 장승업이 그린 그림을 보고 그의 천재성을 확인한 이응헌은 비록 천한 신분의 하인이지만 장승업의 숨어 있는 재능을 아끼고 지속적으로 그를 후원했다.

장승업은 중국 원나라 때의 서화가 조맹부를 비롯해 원말 사대가로 일컬어지는 황공망, 오진, 예찬, 왕몽을 매우 좋아했으며, 화보를 통해 그들의 작품을 보고 배우며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또한 마흔 살 이후에도 중국의 새로운 그림 경향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홍도의 신선 그림, 정학교의 바위 그림, 유숙의 매 그림도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조선 화단을 지배해 왔던 남종 문인화 역시 그의 화풍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장승업은 산수, 인물, 영모, 화훼, 기명절지 등 다양한 소재를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의 작품은 흩어진 듯 짜임새 있는 구성과 개방된 공간, 힘차고 능숙한 필법, 강렬한 묵법과 섬세한 설채법의 뚜렷한 대조, 화면 전체에 넘치는 생동감 등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 사의적 측면보다 기교적인 형태 표현에 치중한 점, 인물묘사와 영모, 화훼, 절지 등 대부분의 작품에서 중국 취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그의 천재적인 기량은 매우 뛰어난 것이어서 당대 제일의 ‘신품()’ 화가로 칭송받았다.

장승업은 조선 초기의 안견, 후기의 김홍도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불린다. 후기의 정선까지 합쳐 4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그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화가로 쇠락해가는 국가의 운명을 지켜보며 화가로서 일생을 살았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조선 초기 세종 연간에 활동한 안견, 그리고 조선 후기 영조·정조 연간의 문화적 황금기에 활동한 김홍도와 정선보다 훨씬 열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승업은 이들 대화가들 중 누구 못지않은 왕성한 창작력과 고도의 세련미 넘치는 미감을 보여주었다.

장승업의 명성은 궁궐에까지 알려져 감찰이라는 정6품 관직을 제수받고, 고종의 명령으로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성격이 호방하고 어디에 매이는 것을 극히 꺼려했던 그는 엄한 궁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세 번씩이나 궁을 빠져나와 황제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민영환이 왕에게 간곡히 청하여 위기에서 그를 구해주었다. 그밖에 한성부 판윤이었던 변원규, 흥선대원군 이하응, 민영익, 오세창, 오경연 같은 문화계 인사들이 그를 후원했다.

장승업의 신운이 넘치는 작품세계는 암울했던 19세기 후반에 시대를 밝히는 찬란한 예술혼의 승리였다. 그의 회화는 자칫 빈약할 뻔했던 조선말기의 회화사를 풍성하게 살찌웠고, 우리 민족사의 어두웠던 한 시기를 정신적, 예술적으로 환하게 밝힌 빛이었다. 장승업은 1897년 그의 나이 55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화풍은 심전 안중식, 소림 조석진에게 계승되었고, 이들을 통하여 그들의 제자인 노수현, 이상범, 변관식 등의 현대 화가들에게 이어졌다.

주요 작품에는 《홍백매십정병()》, 《군마도()》, 《청록산수도()》, 《수상서금도()》, 《영모절지병풍()》, 《풍림산수도()》, 《화조곡병()》, 《담채산수()》, 《화조수도()》, 《포대도()》, 《심양송객도()》, 《어옹도()》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중 간송미술관에 《삼인문년도()》, 《산수도》, 《귀거래도()》, 《기명절지도》가 있고, 호암미술관에 《호취도()》와 《고사세동도()》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승업 [張承業]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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