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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서.화론

독서계, 조선 지식인들에 '미쳤다'

by 최다원 2015. 12. 14.

독서계, 조선 지식인들에 '미쳤다'

'매니아 문화' 꽃핀 영·정조시대
최근 관련 서적 쏟아져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5.07.01 18:40 59' / 수정 : 2005.07.02 06:20 42'


 


▲ 18세기 새로운 문체로 젊은 지식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연암 박지원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불황 속 독서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독한 독서가로 알려진 이덕무, 비둘기를 키워 연구서를 썼던 유득공, 서양 악기에 매혹된 홍대용…. 실학(實學) 지식인들에게 담긴 ‘매니아 코드’와 ‘개혁’, ‘탈(脫)권위주의’가 30대 안팎의 젊은 독자들을 강력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최근 나온 인문서 중 상당수가 18세기 실학계열 지식인들을 다시 보는 책들이다.

18세기 붐의 첫 홈런타자는 정민 한양대 교수가 쓴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김득신(책), 김영(별), 김덕형(표구), 방효량(표구), 정철조(벼루), 김홍도(매화) 등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천착해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을 추적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인문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4월 나온 뒤 불과 몇 주 전까지 1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지금까지 판매부수는 10만부. 애초 출판사에서도 “5000부 정도 나갈 걸로 예상”했던 것으로, 인문서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기록이다.

‘미쳐야 미친다’의 성공 후 최근 18세기 지식인들에 대한 책은 인문·역사서에서 소설·산문 번역으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백탑파’로 알려진 실학자들이 등장하는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황금가지)이 나왔고, 이덕무의 산문집 ‘책에 미친 바보’(미다스북스), 박지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편지들을 발굴한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돌베개), 유득공의 산문집 ‘누가 알아주랴’(태학사), 독창적 필법으로 일세를 풍미했으나 지금은 까맣게 잊혀진 이광사와 이사만의 글씨를 재조명한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한얼미디어) 같은 책들이 선보이고 있다.

왜 18세기인가? 은자(隱者)의 나라였던 조선에도 가톨릭과 서구 문물이 밀려들던 당시 개혁 성향의 젊은 유학자들은 주자학의 이념을 넘어 실학을 추구했던, 요즘말로 ‘매니아’들이었다. 남다른 문장력으로 이름났던 박지원은 ‘허생전’ ‘양반전’ ‘호질(虎叱)’ 같은 소설로 당시의 사회 모순을 질타했다. 당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유학자로서는 정도(正道)를 벗어난 글쓰기였고, 그의 혁신적인 문체는 많은 반발을 불렀지만 그는 자기만의 글쓰기(문체)에 집중했다. ‘북학의’를 쓴 박제가는 일상생활 기구와 시설 개혁 매니아였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은 예전의 실학 붐과는 사뭇 다르다. 실학 자체가 아니라 실학자로 불리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다양한 삶에 대한 관심이다. 최봉영 항공대 교수(한국학)는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는 변화하고 싶다는 커다란 갈증을 가졌지만 실제로 변화하는 것은 매우 적다는 답답함을 가지고 있다”며 “정치·학문·예술에서 그 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흐름들이 등장한 18세기에서 모델과 방향을 찾으려는 욕구가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자기 분야에서 ‘끝장을 보고 마는’ 모습에서 세계화·지식사회·무한경쟁 사회를 살아가야 할 우리의 모습을 본다고도 할 수 있다. 각자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나만의 삶’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20·30대의 트렌드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미쳐야 미친다’의 독자 현은미(31)씨는 “우리 전통 속에 그런 사람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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