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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남겨두고 싶은 순간 - 박성우

by 최다원 2022. 3. 25.

남겨두고 싶은 순간 - 박성우

 

 

 

시외버스 시간표가 붙어있는

낡은 슈퍼마켓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살구나무를 두고 있는

작고 예쁜 우체국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유난 떨며 내세울 만한 게 아니어서

유별나게 더 좋은 소소한 풍경,

 

슈퍼마켓과 우체국을 끼고 있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아 저기 초승달 옆에 개밥바라기!

 

집에 거의 다 닿았을 때쯤에야

초저녁 버스정류장에

쇼핑백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돌아가 볼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나는 곧 체념했다

 

우연히 통화가 된 형에게

혹시 모르니, 그 정류장에 좀

들러 달라 부탁한 건, 다음날 오후였다

 

놀랍게도 형은 쇼핑백을 들고 왔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있었다는 쇼핑백,

쇼핑백에 들어있던 물건도 그대로였다

 

오래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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