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시

돌에 대하여 - 이기철

by 최다원 2023. 2. 7.

돌에 대하여 - 이기철  



구르는 것이 일생인 삶도 있다
구르다가 마침내 가루가 되는 삶도 있다
가루가 되지 않고는 온몸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뜨겁게 살 수 있는 길이야 알몸밖에 더 있느냐
알몸으로 굴러가서 기어코 핏빛 사랑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야
맨살밖에 더 있느냐
맨살로 굴러가도 아프지 않은 게
돌멩이밖에 더 있느냐
이 세상 모든 것, 기다리다 지친다 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지치지 않는 게 돌밖에 더 있느냐

빛나는 생이란 높은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치열한 삶은 가장 낮은 데 있다고
깨어져서야 비로소 삶을 완성하는
돌은 말한다
구르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삶이,
작아질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삶이 뿌리 가까이 있다고
깨어지면서 더욱 뭉쳐지는 돌은 말한다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노래 - 오세영  (0) 2023.02.09
나무의 정신 - 강경호  (0) 2023.02.09
결 - 이정록  (0) 2023.02.07
다시 피는 꽃 - 도종환  (0) 2023.02.03
눈 오는 날 - 신진호  (0) 2023.02.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