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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피맛골에 낮달 뜨면

by 최다원 2023. 2. 12.

피맛골에 낮달 뜨면 
- 주점 '열차집' 추억 - 

                                                        현상길 


피맛골 어귀로 낮달 기울면 
서둘러 열차를 탔다. 
도시는 오후에 허덕이기 한창인데 
삼등칸 이미 술시인 듯 출렁거리고 
옆자리 초면의 사내들 허풍도 정겨이 
객실은 빼곡한 정담으로 들떠 있다. 

잠시 멈춘 쳇바퀴에서 뛰쳐나와 
승객들은 느슨해진 너털웃음으로 
낮달 조각 떼내어 풀무질하며 
저마다 해묵은 불씨 살려내랴 
들썩들썩 법석구니 놓는다. 

푸른 바다 끓는 뚝배기엔 
젊은 날 파도 진하게 우러나고 
녹두전 한 판 큼지막이 지져내면 
박주라서 어떠랴 단사표음 별건가, 
세파 헤친 얼굴마다 노을이 붉다. 

머뭇대는 종점에도 어둠이 깊어져 
이마마다 달덩이 하나씩 달고 
아쉬움 내뿜는 승객들 발길 뒤 
다시 떠오를 낮달 기다리며 
열차는 기적 없이 애틋이 잠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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