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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하늘밥 - 김명인

by 최다원 2024. 1. 24.
하늘밥 - 김명인



언제부턴가, 한 공기의 밥도 반쯤 덜어내시는
어머닐 보다 못해, 것도 다 못 드시면 어떡해요?
역정이 난 듯 짐짓 언성도 좀 높였지만
나는 그 절반이 이미 하늘밥으로
덜어놓은 것임을 알고 있다.
아는 것으로 쓸쓸해지는 것은 순명(順命)의 자리뿐일까?
하늘에서도 끼니를 때워야 한다면 어머니는
끝끝내 보리밥이나 나물죽 따위는 드시지 않으실 것이다.
고집이란 표백된 슬픔이어서
곱삶은 보리밥에 신물이 난 기억은 내게도 있다.
사십 일 금식 기도 끝 회복기에도
어머니는 한사코 죽그릇을 밀어내셨지.
삶은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건천(乾天)인가, 햇살로 몸 물을 대시려고
날마다 조금씩 더 가까이 양지쪽으로 다가앉으시는 어머니,
겨울인데도 농사꾼처럼 검게 그을리셨다.
저녁나절에는 앞길 마당귀가 그나마
한 뼘쯤 해거름 늘어져
그 처마 밑으로 몇 년째 의자를 옮겼었는데
산소의 양도 그만큼 줄이셨으니 햇살 부피도
눈에 띄게 엷어졌으리.
땅 위에서의 소비가 나날이 검소해지면서
슬픔도 하늘 창고에 하나씩 옮겨 쌓이는 걸까?
새벽 기도마다 끼워넣던 축축한 호명들조차
이제는 많이 성글어졌다. 아니, 아니
눈물은 하늘의 공해리니
지상의 터전에나 뿌려놓고 그곳에서는
새 이슬밭 다시 경작하시려는가.
벌써부터 다짐하고 준비하시는
어머니, 단단한 각오 어느새 대단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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