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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비 오는 날에 - 나희덕

by 최다원 2026. 3. 6.

비 오는 날에 - 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 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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