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엄마의 글자 - 김은혜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던 엄마
이제는 등으로 기역자를 쓰면서
길을 간다. 삐뚤삐뚤 서툰 글씨에
삶의 주름이 겹겹이 쌓인다
그 낫으로 베어낸 풀과 이삭
배우고 들은 적도 없는 손으로
일구어낸 글자가 샐 수조차 없다
허리로 글자를 만들어 지고 가는
엄마는, 오늘도 기역자 하나 쓰고
그 옆에 자식들 이름자를 쓴다
"엄마 내가 누군지 아세요?"
물어보면 씨익 웃으면서 "누구요?"
기억이 사라진 엄마
길이 보이지 않아도 등에 진 것은
글자가 아니라 자식이다.
- 2025 서울 詩 지하철 시민공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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