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할 때는 - 강태승
햇빛이 마루에 그득그득 쌓였는데 같은 햇빛인데도
미농지처럼 얇아 좀처럼 퍼 담을 수 없다
뒤쥐 떨어진 날 고구마 감자로 겨우 끼니를 때우면
부른 배 더 부르라고 오후의 햇빛이 마루를
데워주는 것에, 슬픔과 외로움도 그을리던 시절을
굳이 웃음으로 뒤집어 호박잎에 싸서 먹으면
다시 가난해져 고구마 감자만 한 사흘 먹다가
다시 사흘쯤 막걸리만 마시며 마루를 뒹굴고 싶다
수수 보리 조 무밥을 쉰 김치에 얹어 먹거나
아버지 어머니와 개떡으로 밭가에 둘러 애기하면
목화 참깨 고추 콩 수수들이 한 소식 들으려고
몸을 뒤척이던 때가 엊그제처럼 버려져 있는 것,
어두워도 풀잎만 주섬주섬 뜯는 소의 궁뎅이를
툭 치면 싫은 듯 무거운 듯 게으르게 일어서는
개밥바라기가 웃는 듯 우는 듯이 반짝이거나
이래저래 가깝고도 먼 즐거운 가난한 한 때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서 바라보니
나도 풀섶의 풀로 햇빛이나 물었으면 하는 생각이
이미 식어버린 둥치에서 하나 둘 피는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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